생각 | 상상 :: 2010/01/25 06:03

그다지 큰물이 없는 내륙지방, 촌 동네에서 자란 나는 수영에 큰 관심도 없었고,
수영을 잘한다고 누구에게 칭찬을 받은 적 또한 없으며, 어린 시절 두 번이나 익사 직전에
살아난 물에 대한 체험적인 공포 때문에 난 다른 사람보다 두 배로 더 힘들었었다.//

당시 중위 때였다. 해상훈련을 가면, 그냥 모터보트 타고 멋지게 해안으로 침투하는 생각만 가끔 했었지.
물을 먹이고 지옥을 체험케 하려 작정하고 있는 교관, 조교들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몸 좋은 놈들에게 일 타로 놀라고, 수영 잘하는 사람들에게 놀라고. 계속 놀라는 것의 연속이었다.//

내 기억에 우리 지역대는 24인용 텐트 2개에 전 인원이 들어갔다. 상사, 선임하사들(중사),
그렇게 밤이 되면 아우슈비츠처럼 누워 자는 사람들 가운데 불침번도 서야 하는 막내 하사들이
후 번 근무자를 잘못 깨워 일어나는 불상사(?).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에 누가 실수했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얼굴이 부어 있어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고됨이랄까?//

먹는 것, 자는 것 그리고..., 왜 그렇게 꼭 텐트의 여유조차 없이 극한으로 몰아넣었는지......
장교들도 다른 것은 없었다. 똑같은 피 교육생의 대접(?)...그저 밥이라고 식기에 타서 팀원끼리
모여서 타 먹으니, 다른 사람이 오면 누가 장교인지 맞추라고 하면 아마도 못 맞추었을 것이다.

특전사 장교는 불쌍하다.... 비참하고 억울하리 만치 말이다. 아직도 기억하는 한 장면은 90년대
초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천의 특공연대에서 위탁 온 대위 두 분이 해상훈련을 오자마자
자대 대대장의 명인지 자의인지, '인명구조반'에 들어갔다. 남들은 그저 인명구조법을 배우겠거니
하겠지만, 사실상 많은 얼차려와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인명구조 피티(좀 다르다)와 하루 종일 물에서
생활(수영)을 하는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만약 인명구조반이 잠깐 쉬기라도 하면 (특전사)대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밑에서는 열심히(물질) 해도 쉬는 장면이 자꾸 보이면 왠지 농땡이 치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명구조반이 대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보트 주위에서 스카링하며 서 있을 때뿐이다.
조교들은 특식으로 나온 옥수수 빵을(물론 음료수도 같이) 힘껏 저 멀리 던져 버린다. 수영해서
잡아먹으라는 것. 일반적이어도 스카링 상태에서 먹게 하고, 좀 더 괴롭히면 한 손을 못 쓰게 하고
스카링을 시킨다. 더 가면 양손 만세 스카링 계속... 내 기억에 진짜 인명구조법은 나중에 사회시험관
(인명구조 시험관)오기 전에 가르쳐 주었다는...//

그리고, 훈련 마지막에 장거리 수영 측정을 한다. 어느 날 아침, 아침을 일찍 먹고 (안면도 훈련장)
모종의 일 때문에 몇 명과 같이 지나다가, 장교 가족 텐트(위에 언급한 화천의 특공연대에서 파견
나온)들이 있는 곳을 지난다. 쉽게 말하면 직업군인인 가족들, 주로 대위 계급의 가족들이 훈련장 끝의
좀 언덕배기 같은 곳에 드문드문 민간인 텐트를 치고 거기서 일과시간 이후를 보낸다. 그나마 파견 나와
이정도는 최고의 대우아닌가..라는 생각을 그 당시에 했더랬다.
나는 뭐지? 라는 생각과 함께...ㅋㅋ//

그리고 우리 팀장(중대장)님의 동기 이자 화천의 특공연대에서 같이 전출 온 대위님의 텐트를 지나게
되었다. 그분은 꽤 얼굴이 매끈한 미남이었으나 얼굴색이 오랜 군 생활로 가무잡잡했고, 또한 말수가
없고 조용하며, 강압적인 분위기 보다는 무거운 것 있으면 앞장서서 들고 팀원과 같이 가는 그런 분으로 기억한다.

가족이 밥을 먹고 있었다. 예쁘고 어린딸이 둘 있는 가족이었다. 반찬은 뭐 별거 없었으나 그래도 아내가
해준 밥이니 우리 추레라 밥보다는 좀 나은 편. 대위님은 이미 인명구조반의 일주일 정도를 보냈고,
온몸이 쿤타킨테처럼 달구어진 상태에서 수영팬티만 갈아입고 앉아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버너와 코펠로 조리한....

대위님은 얼굴에 피곤이 쩔어 있었고, 두 따님은 아직 적응을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엄마로부터
바닷가에 놀러간다고 왔을 텐데, 아빠는 시커멓고 곤죽이 되어 하루 종일 나가 있고, 근처에서는
군발이들이 하루 종일 괴성을 지르고 있고, 당시 그 군인가족용 샤워실은 몇 칸 그냥 바람막이로
막아둔 상태였으나 그 나마 군인가족 텐트와는 거리고 좀 있었다.

집이라고 하면 샤워실과 화장실도 좀 가까워야 하는데, 이건 뭐. 그때 당시 내 생각으로, 왜
가족들을 불러서 이 고생을 시키나 좀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던지... 그런 생각을 했다. 샤워장이라도
갈라치면 슬리퍼를 신고 80미터 정도는 가야 한다. 우리들이야 매냥 그렇지만, 화장실과 샤워장을
쓰기 위하여 오가는 도중에 땀이 나야 했던, 사모님들이나 아이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천천이 모래알 씹듯이 밥을 입에 넣고 씹는 아빠의 표정과 동일하게 두 어여쁜 공주님들의 얼굴도
매우 어둡고 무거웠다. 그리고 아빠의 일정에 맞추어 일찍 일어나 강제로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싸모도 많이 피곤해 보였다. 다음 해에는 분명히, 절대로 안 따라올 것이 확실했다. 아니면....//

더군다나 피서의 피크인 낮동안 아빠는 저 멀리 바다에서 교번만 소지하고 계급을 반납한 채, 특전사대대
중, 상사 교관들에게 쿠사리 먹으면서 허우적대고 있으니 심히 볼 광경은 아니었다. 바다에 온다고
들떴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참혹한 피서가 아닐 수 없었다.
해지고 들어온 아빠는 바로 쓰러져 뇌사 상태...//

그 아침에 텐트앞 깔판에서 조식을 하던, 검게 그을린 사나이와 식솔들...

정말 불쌍했다!!!!!!

그때도 지금도 고통을 감내하는 사나이들이 있어 국민들은 행복한 아우성을 내는지 모른다.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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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음의 꿀단지 2010/02/26 15:42  수정/삭제  댓글쓰기

    ,군생활은 2번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남자라면 꼭 가야 지요..
    동해쪽에서 근무해서 그런지 글을보니 솔솔한 추억이 생각이 납니다...^^

  2. 비밀방문자 2010/05/04 20:27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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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밀방문자 2010/07/30 18:19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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