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술친구' 에 대한 글: 1개

  1. 2009/06/15 머저리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
생각 | 상상 :: 2009/06/15 04:50

친구.
돌아보면 든든한 채널 하나 가지지 못한 건 나 아닌 누구에게로 핑계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닌 걸 깨닫는다. 결국 내게로 돌아온 무심은 그동안 쌓아온 내 무심들의 재앙이다. 최소한 관계에 관한 한 스스로에게 침뱉어 온 인생이 아니었을까?
옛 사람들이 '딱 하나의 친구라도 동행할 수 있는 인생이었다면 그건 외롭지 않는 삶다.'라고 세상 관계를 에누리하여 요약했는지 짐작이 간다.//

친구는 처음에 늘 달콤한 제안이었으며 희망적인 약속이었다. 그러나 제안과 약속은 얼마 못가서 깨지고 남는 것은 관계를 확인하겠답시고 상대방의 기분과 삶에 흠집을 내는 무모하지만 애절한 친밀로 이어져 온듯하다. 저 무례하고 불필요한 동행을 당장 해고하고 싶지만, 우정이라는 가장 치졸한 울타리를 가장 든든한 우정이라 바득바득 우겨가며 나 자신을 소모하면서 고독을 속여보려는 허튼 수작일 뿐이었다.//

소통이란 애초에 없었다. 모두가 그걸 알면서 잠정적인 자기 최면을 위하여 벌이는 공모일 뿐인것같다.
자정을 넘기는 순간에도 돈독한 우정이라는 서로의 울타리에 갖혀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마는 그런 우정의 발로는 더이상 진행이되지 않기만을 간절할뿐이다.//

친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을 때 가차없는 결별을 선언해버리는 일. 혹은 그 무거움을 희화화하려는 얄궂은 친압들이 내 속에서 뛰어나오는 일들이 단 하나 만의 긴밀한 소통이라도 유지해보려던 내 갈망을 배신해왔다. 친구는 작은 파도에도 손을 놓아버릴 수 밖에 없는, 잠정적인 결탁이나 다름 없었다.//

왜 그렇게 취약했을까? 우정의 달콤한 제안들, 혹은 희망적인 약속들을 섣불리 믿는 내 어리석음 때문일까? 혹은 게으름과 변덕에 내몰려 어느 샌가 잃어버리는 첫 마음 때문일까?...//


스물에 못한 일, 서른에 못한 일을 지금 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말로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관계에 대해 쌓아온 절망들의 모습이 이젠 우정을 띄워올리는 부력조차 사라지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그리하여 내게 친구란 하나의 몸짓, 하나의 제스처일 뿐, 그 이상의 무엇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한 불온한 결탁이라면, 그런 건 오히려 자신있을지 모른다. 혹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위로하기 위한 트릭이라면 그런 건 오히려 쉬운일일거라는 무덤을 만들고 만다.//

술친구란 말이 있다. 술이라는 매개가 자아내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힘입어 서로 얼싸안고 기꺼워하는 관계에 친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라면...이것은 분명 그 낱말에 대한 모독에 가까울 거라는 생각.//

삶은 출렁거리는 거짓말들 사이를 넘보는 불길한 행진이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징검다리보다는 저 출렁이는 물살들을 긍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친구는 거짓말들 사이의 또다른 거짓말이거나, 우연히 떠오른 진정성의 부표같은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나를 닮은, 나의 거짓말을 닮은, 나의 거짓말을 거짓말로 이해해주는, 그리하여 부정을 부정하는 긍정으로 나의 대갈통 깊숙히 닿아있는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다. 이젠 그럴 필요도 없다. 내 스스로가 좋은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그저 인간적인 약점들에 공감하는, 그리하여 함께 시간에 떠밀려가는 얍삽한 존재로 서로를 들여다보는 그냥 어설픈 친구라도 만나고 싶다. 어쩌면 거기 있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앞날에 대한 끈끈한 기약도 없을 뿐더러, 그 어떤 기꺼움도 훗날 추호의 부담을 주지 않는...

무게없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런 머저리 같은 친구를 만나고 싶은지 모른다.//

by.자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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